술은 인류 역사와 함께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술의 고유한 우리말은 ‘수블/수불’이었다고 하는데요

조선시대 문헌에 ‘수울/수을’로 기록되어 있는 점을 미루어
술이라는 말은 ‘수블 > 수울 > 술’로 변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술을 언제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 이전인 마한시대부터 한 해의 풍성한 수확과 복을 기원하며
맑은 곡주를 빚어 춤, 노래와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는
발효의 나라라 불릴 만큼 훌륭한 술과 장담그기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는데요
고구려의 주조기술은 중국으로 건너가 곡아주라는 술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양조곡주들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상류사회에서는 청주류의 술을 음용하는 것이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주류양조법이 발전되어 누룩의 종류와 주류 제품이 다양해지고
소주가 전래되면서 우리나라 전통주의 기본형태가 완성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술의 제조 원료가 멥쌀에서 찹쌀로 점차 바뀌게 됩니다.
또한 발효기술도 바뀌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명주로는 백하주, 삼해주, 이화주, 부의주 등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맛의 술들이 생겨나면서
서울의 약산춘, 여산의 호산춘, 충청의 노산춘 등이 명주로 손꼽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개항기 이후 일본이 주세법을 도입하면서
집에서 술 빚는 행위가 불법이 되었고 가양주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주세법이 강화된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음식점들은 물론이고
일반 가정에서도 양조장이나 배급소에서 막걸리를 사서 음용했다고 합니다.

이후 정부의 양조장 통합 정비 정책 등을 통해 양조장 수가 줄어들고
지금의 희석식 소주 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부터는 다시 쌀로 술을 빚을 수 있게 되면서 쌀 막걸리가 재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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